영화 바르도: 기억과 후회, 우리는 삶을 얼마나 주체적으로 살아왔는가?
<바르도, 거짓된 연대의 허상>(Bardo, False Chronicle of a Handful of Truths, 2022)은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몽환적 서사 속에서 한 인간이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마주하는 기억과 후회, 그리고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영화다. 주인공 실베리오는 멕시코계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성공한 이민자의 삶을 살았지만 내면에는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기억과 후회,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뒤엉켜 있다. 영화는 그가 인생의 중간 지점인 ‘바르도(중음)’ 상태에서 자신의 선택과 삶을 성찰하는 과정을 그리며, 우리는 과연 얼마나 주체적으로 살아왔는지를 묻는다.
1. 기억은 진실을 반영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만든 허상인가?
영화 속 실베리오는 자신의 과거를 조각난 기억과 환영의 형태로 마주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부모, 잃어버린 아이, 조국 멕시코와의 끊어질 듯한 유대,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까지, 이 모든 기억들은 일관된 서사로 이어지기보다는 왜곡된 인식과 감정의 파편으로 나타난다. 그는 끊임없이 회상하지만, 그 회상이 곧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기억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이지만, 동시에 주관적 필터에 의해 왜곡되기도 한다. 이는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역사 인식론과 연결된다. 니체는 인간이 기억을 통해 과거를 해석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현재의 관점과 욕망에 의해 재구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베리오가 떠올리는 과거는 실제 사건이라기보다는 그가 받아들이고 싶은 방식으로 각색된 서사이며, 그 안에는 자책과 합리화, 도피가 뒤섞여 있다. 그는 잃어버린 자식에 대한 슬픔을 극복하려 하지만, 그 기억은 환영 속에서만 반복된다. 또한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기억이란 본질적으로 ‘흔적’이며, 완전한 복원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실베리오가 겪는 회상의 세계는 바로 이 불완전한 기억의 세계이다. 그는 진실을 찾고 싶어 하지만, 영화는 그런 진실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삶에서 믿고 있는 기억은 과연 객관적 진실인가,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인가? 영화는 이 질문을 은유적 이미지들로 끊임없이 던진다.
2. 후회는 삶을 되돌릴 수 있는가, 아니면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인가?
실베리오는 후회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아들과의 단절, 아버지와의 불화, 조국과의 거리감, 그리고 자신의 성공이 타인의 고통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까지 떠안고 있다. 그의 후회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를 부정하는 자기 파괴의 형태로 확장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 후회를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다시 바라보는 성찰의 기회를 얻는다.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인간은 자유롭고, 그 자유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하며 살아간다고 주장했다. 실베리오의 후회는 그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결과이자, 그 선택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형성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과거로 도망칠 수 없으며, 오직 현재 속에서 선택하고 책임지는 존재다. 한편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 인간은 항상 '되돌릴 수 없음' 속에 산다고 했다. 실베리오가 경험하는 후회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 존재의 결과이다. 그는 과거를 바꾸려 할수록 더욱 괴로워지지만, 결국 그 후회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직면하게 된다. 후회는 시간을 되돌리는 기능이 아니라, 존재의 깊이를 인식하게 만드는 철학적 감정이다.
3. <바르도>가 말하는 삶의 주체성과 정체성
<바르도>는 우리에게 한 가지 분명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온 주체인가? 아니면 타인의 기대, 사회의 구조, 후회의 감정에 이끌려 살아온 수동적 존재였는가? 실베리오의 여정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그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되묻는 여정이다. 기억은 명확하지 않고, 후회는 반복되며, 정체성은 흔들린다. 그러나 그 모든 혼란 속에서도 영화는 인간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삶의 의미를 다시 정의할 수 있음을 말한다. 실베리오는 완벽한 해답을 얻지 못한 채 여정을 끝내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이다. 삶은 완벽하지 않으며,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실패하고 후회하며, 기억을 왜곡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속에서 다시 자신을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은 곧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시도다. 결국 <바르도>는 묻는다. 당신의 삶은 누구의 것이었는가? 우리는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삶을 선택할 수 있는가? 그 물음은 어쩌면 영원히 중음(中陰) 상태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